술과 여자 예절
" 술과 여자 " 라는 말이 있듯이 알코올과 섹스는 연상적으로 맺어지기가 쉽다.또한 우리나라에도 주색잡기 ( 酒色雜技 ) 라는 말이 호탕하고 남자다운 사람들의 전리품처럼 회자되기도 한다. 실제로 술을 한 두 잔쯤 마시기 시작하면 약간 흥분하게 되며 말도 많아지고 여러 가지 욕구가 일어난다. 이 욕구 가운데 성적 욕구도 생겨나 부부관계에 좋은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다. 한방울의 술도 마시지 않고 이성을 유혹하는 것은 여간 뻔뻔한 사람이 아니면 안된다. 그런데 한 번 취해버리면 상대를 태연하게 손을 잡거나 껴앉으려고도 한다. 즉, 자제심과 수치심이 서서히 소실되는 것이다. 그래서 음주량과 개인적인 흡수능력에 차이가 있지만 알코올이 체내에 퍼지기 시작하면 대부분이 목소리가 커지고 다소 용감(?)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술이 성욕을 높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일종의 최음제(성욕항진제)가 된다고 일컬어지고, 그런 목적의 칵테일이나 약용주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위스키의 본고장인 영국에는 술에 관한 속담이 많이 있다.
1923년 노벨상을 수상한 유명한 영국의 민족시인 예이츠 ( Yeats, Williams, Butler ) 는 자신의 술노래라는 시에서 술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술은 입으로 들고
사랑은 눈으로 마신다
늙어서 죽기전에
참이라 깨달을건 이것 뿐이라
나는 왜 입에 잔을 들면서
그대를 바라보고 한숨 짓는가
또한 영국에는 『좋은 술은 좋은 피를 만든다』,『친구와 술은 오래 될 수록 좋다』 등의 술에 관한 속담이 많다.
이뿐이 아니다. 아일랜드의 시인 조지 러셀(Russell, George, William)은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누가 술을 권하면 그는 『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태어날 때부터 취해 있습니다』라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조지 러셀은 술을 마시지는 않았지만 술에 대해서만큼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술과 사랑을 불가분의 관계로 선인들은 노래한 것이다. 그러나 의학적인 데이터에 보면 알코올은 성호르몬 분비 촉진 작용은 전혀 없고, 어느 양 이상에서는 오히려 억제하게 된다고 한다. 대량의 알코올은 뇌간 망양체에서 척추에까지 영향을 미쳐 척추반사를 늦추고 성욕마저 잠재우고 만다. 이 역시 중요한 것은 개인차가 현저하며 개개인의 심리상태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간혹 관광버스 안에서 버스가 흔들릴 정도로 아주머니들이 춤을 추는 것을 볼 수 있다. 적당한 알코올이 우리 몸에 들어가면 뇌신경이 억제되어 모든 잡념과 시름에서 일탈하게 되며 긴장이 풀리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의학적으로 알코올의 흥분작용이며, 이는 뇌의 억제 작용에서 해방된 것을 말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알코올은 불안이 해소되고 스트레스에서 해방감을 맛볼 수 있도록 하는 촉매제가 된다. 하지만 이성보다는 감정이 뇌세포를 지배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것이 결코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술에 의존해서는 안되며 술을 통해 즐거운 삶이 영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술과 섹스도 불가분의 관계이지만 조화로운 가운데 이루어져야 그 가치가 돋보이는 것이다.
조상들의 주도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술의 문화가 대단히 고상하여 근대에 이르기까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속을 이루어 왔다. 술을 음식 가운데 가장 고귀한 음식물로 인정한 우리 민족은 술 자체를 숭상할 뿐만 아니라 술에 따른 그릇까지도 중시하여 특별하게 제작하였다.
우리 술의 유래는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고증할 수는 없으나 고대 제천의식에 군무놀이가 있었다는 것을 보면 옛날로부터 술을 하늘에 바치고 기분을 돋우는 음식으로 활용하여 왔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 삼국시대에는 이미 술에 대한 금법(禁法)이 발표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신라 벌휴왕 3년에는 시장거리에서 술주정하는 것을 금지하였고, 고구려 안원왕 2년에는 흉년이면 사원에서 양조하는 것까지도 금지하였다. 고려에서는 지방고을에 명령하여 배불리 먹고 마시며 즐기는 것을 금지시켰으며, 조선 태종 원년에는 왕 스스로 금주하여 백성들의 비밀 음주를 금지시켰다.
음주예절
우리 조상들의 음주 예절이 잘 나타난 것이 바로 <향음주례(鄕飮酒禮)>이다.
향음주례에서 특히 강조하고 있는 주도는
첫째, 의복을 단정하게 입고 끝까지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말 것
둘째, 음식을 정결하게 요리하고 그릇을 깨끗이 할 것
셋째, 행동이 분명하여 활발하게 걷고 의젓하게 서고 분명하게 말하고 조용히 침묵하는 절도가 있을 것
넷째, 존경하거나 사양하거나 감사할 때마다 즉시 행동으로 표현하여 절을 하거나 말을 할 것 등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소학에서 술에 임하는 예법을 익힘으로써 술로 인한 추태나 분쟁이 거의 없는 풍속의 고장, 예의의 나라가 되었다.
어른을 모시고 술을 마시는 예법에 대해 소학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술이 들어오면 자리에서 일어나 주기(酒器)가 놓인 곳으로 가서 절하고 술을 받아야 한다. 감히 제자리에 앉은 채로 어른에게 술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른이 이를 만류하면 비로소 제자리에 돌아와서 마신다. 어른이 술잔을 들어서 아직도 다 마시지 않았으면 젊은이는 감히 마시지 못한다. 어른이 마시고 난 뒤에 마시는 것이 아랫사람의 예의이다.
어른이 술잔을 주면 반드시 두손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른을 모시고 술을 마실 때는 특히 행동을 삼가는데, 먼저 어른에게 술잔을 올리고 어른이 술잔을 주시면 반드시 두 손으로 받는다. 또 어른이 마신 뒤에야 비로소 잔을 비우며, 어른 앞에서 술을 마시지 못하는 것이므로 돌아앉거나 상체를 뒤로 돌려 마시기도 한다.
술잔을 어른께 드리고 술을 따를 때 도포의 도련이 음식물에 닿을까 보아 왼손으로 옷을 쥐고 오른손으로 따르는 풍속이 생겼다. 이런 예법은 현대 소매가 넓지 않은 양복을 입고 살면서도 왼손을 오른팔 아래에 대고 술을 따르는 풍습으로 지금껏 남아 있다.
술은 임금에서부터 천민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즐겨 마셨기 때문에 주례는 술과 함께 매우 일찍부터 있었다. <고려도경(高麗圖經)>의 '향음조(鄕飮條)'에 따르면, 고려에서는 이 주례를 매우 중하게 여겼다고 전한다.
잔치 때 신분이 높은 사람은 식탁에 음식을 차려놓고 의자에 앉아서 술을 마신다. 그러나 신분이 낮으면 좌상(坐床)에 음식을 놓고 두 사람이 마주 앉아서 마신다. 잔치에 객이 많으면 좌상을 늘린다.
또한 조선후기 사람인 이덕무는 <사소절>에서 "술이 아무리 독하더라도 눈살을 찌푸리고 못마땅한 기색을 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또한 술은 "빨리 마셔도 안 되고, 혀로 입술을 빨아서도 안 된다."고 하였다.
술마시는 예절
박지원의 <양반전>에는 술 마실 때 수염까지 빨지 말라 하였다. "술을 마셔 얼굴이 붉게 해서도 안 되며, 손으로 찌꺼기를 긁어 먹지 말고 혀로 술사발을 핥아서도 안 된다. 남에게 술을 굳이 권하지 말며 어른이 나에게 굳이 권할 때는 아무리 사양해도 안 되거든 입술만 적시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남에게 술을 따를 때는 술을 술잔에 가득 부어야 하며, '술은 술잔에 차야 맛'이라고 하는 말이 지금도 쓰인다. 또한 술은 개인의 인격을 나타내고 크게는 나라의 정치와 법을 알 수 있는 매개체였음을 알 수 있다. <사소절>에는 "훌륭한 사람은 술이 취하면 착한 마음을 드러내고, 조급한 사람은 술이 취하면 사나운 기운을 나타낸다."라고 적고 있다. 그래서 항간에는 '술이 사람을 안다'고도 얘기를 한다.
진로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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