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만취한 청년 4명이 5 0대 남자를 구타하여 중상을 입혔다.
구속된 가해자들이 구타사실을 부인하여 피해자를 법정에 증인으로
소환하였다.
피고인들은막상 증인이 법정에 나오자 양심에 찔린 듯 고개를 떨구
었다.
불편한 몸으로 증언을 마친 증인에게 나는 별 기대 없이 물었다.
“피고인들을 어떻게 처리하기를 바라십니까?”그는 한참 동안 가만히 있더니
결심한 듯 대답하였다. “젊은이들이 나이도 어리고 처자식도 있는데 어떡하겠습니까?
다시는 행패부리지 않는다고 맹세하면 용서해 주시지요.”이 말에 나는 물론 검사와 변호사,
무엇보다도피고인들이 깜짝 놀랐다.
가해자가 구속되면 피해자는 합의조건으로 무리한 금전배상을 요구하고,
심지어는 엄벌해 달라고 탄원서를 내는 것이 보통인데 그는 아무런 조건 없이 용서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다시 확인하였으나 그의 뜻은 명백하였다. 치료비도 못 받았지만 피고인들의 나이를 생각해서 용서해 주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종교인이나 부자도 아니고 오히려 생활이 궁핍한 것 같았지만, 그 태도에는 소박함과 사람에 대한 연민을 느끼게 하는 힘이 있었다.
재판을 해오면서 나는 언제부터인가 사람을 두 유형으로 나누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그 기준은‘다른 사람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있는가?’이다.
달리 표현하면‘자신을 넘어서는 사람’과‘자기 자신에게 갇힌 사람’이라고도
하겠다. 위 피해자는 자신이 큰 고통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입장을 벗어나 피고인들
의 어려움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가해자의 사정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마음은 보통 사람이 갖기
어려운 경지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이익과 자기 문제에 몰두해 다른 사람에게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는다.
관심은커녕 돈 문제로 부자(父子)나 형제 사이가 원수가 되어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나는 이러한‘관심’의
문제가 단순히 삶의 태도나 성격의 차원이 아니
라 총체적인 행복에 관한 문제라는 사실을 점차 느끼게 되었다. 재판과정이나 사
회생활에서 생기 넘치고 행복한 느낌을 주는 사람과 지치고 불행한 느낌을 주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 구분은 돈이나 지위 같은
객관적 조건보다 마음이 얼
마나 관대하고 넉넉한가에 달려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이렇게 넉넉
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프랑스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인 아베 피에르 신부는 거리의 부랑자들을
모아엠마우스 공동체를 창설하여 많은 사람에게 갱생의 길을 열어 주었다.
그가 이공동체를 시작한 것은 전과자인 조르주를 만났을 때였다. 조르주는 교도소에서출소한 후 가족에게서
버림받자 자살을 기도하였다. 이때 걸인들의 구호사업에바쁘던 피에르는 조르주를 위로하는 대신“자네가 죽고 싶은 심정이라는 것은 알
겠네.
하지만 죽기 전에 우선 내게로 와서 좀 도와줄 수 없겠나?”라고 부탁하였
다. 얼떨결에 피에르의 일을 돕던 조르주는
자신이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
게 되었고 행복한 사람으로 변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치는 하나의 역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인간이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록 더 불행해지고, 자기생각을적게 할수록 자신에게 더 충실해진다는 사실.
자기 생각, 자기 문제에 몰두할수록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반대로 남에게 관심
을 가질수록
자기 삶이 풍성해지는 것이다. 모든 종교가‘삶의 지향점(指向點)’을
자기 자신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돌리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기 연민,
후회, 자학, 우울증과같은 불행의 원인은 자의식 과잉에 있고, 그 치유는 삶의 방
향을 돌림으로써 가능한 것 아닐까?
이처럼 마음의 방향을 돌려 넉넉해지는 작업
을 나는‘행복훈련’이라고 부르고 싶다. *
2004년11월_
윤재윤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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